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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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1월 7일 목요일 오후 8:42

아이트나 산의 황량한 풍경이 우릴 맞이했다. 거대한 바위들이 갈라져 뾰족함을 뽐냈다. 바위 사이를 거세게 몰아치는 바람에 평원에 있는 악마들의 냄새가 풍겨왔다.

나는 에스텔과 마주섰다.

에스텔의 찢어진 날개 피막으로 핏방울이 흘렀다. 더 이상 아스타로테라는 고명한 악마의 모습은 볼 순 없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연이은 전투로 우린 이미 만신창이였다.

“트레이너 괜찮겠어? 너무 무리한건 아니야?”

“흥, 우리 고객님께서 스쿼트도 제대로 할 줄 모르시면서 말만 번지르르하시네.”

그녀는 어림없다는 표정의 나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그녀의 미소에 굽어진 입꼬리 사이로 송곳니가 작게 튀어나왔다.

이미 그녀에게 받은 트레이닝만 3년이었다. 처음 만난 필라테스 학원에서의 허약한 나는 더 이상 없었다. 이 곳에 있는 것은 강력한 트레이닝을 통해 단련된 강인한 근육 괴물뿐이었다.

바알에게 반항하고자, 엘리트였던 능력을 방치하고 태만의 역할을 성실함으로 보여주던 그녀. 그런 그녀가 단련한 나는 그 만큼이나 강해진 것이다.

아직도 그녀가 인간의 고통을 모으기 위해 인간을 괴롭히던 헬스장 PT실과 필라테스 고문실의 기억이 눈앞에 선했다.

하지만.

“이젠 이 곳엔 강인한 근육 전사, 나님만 존재할 뿐입니다. 트레이너.”

나는 건강한 미소를 지었다. 왠지 치아가 빛나는 듯 했다.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알지? 내가 널 보내는 이유.”

“그럼. 이 근육이 그걸 증명하지!”

“또 오바한다. 내가 그걸 얘기하는 게 아니잖아.”

“…….”

물론 안다.

하지만 진지하게 이야기하는 것이 난 싫었다.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면,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 것이었다. 우리가 짊어진 목적은 그만큼 무거우니까. 하지만 내 바람과는 달리 이별이 이미 성큼 다가왔다.

에스텔은 나에게 그녀의 정수를 내밀었다.

태만의 오브.

그녀의 미래예지의 원천이자, 그녀의 사역룡을 따르게 한 매개체. 그녀가 세상에 존재하면서 모아온 능력의 결정체였다.

사실상 그녀가 이뤄온 모든 것을 나에게 주는 것이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오브를 받아들었다.

오브를 통해 그녀의 힘이 흘러들어왔다. 심상을 스쳐가는 다양한 미래예지의 갈래들 사이 그 어느곳에서도 우리가 다시 만나는 결과는 없었다.

심상에서 깨어난 내가 눈을 크게뜨고 그녀를 찾았지만 그녀는 없었다. 에스텔는 이미 말 없이 바알의 군대로 향한 것이었다.

난 오브를 세게 그러쥐었다.

그리고 계획대로 아이트나 산을 오르기로 했다. 헤파이스토스에게 받을 마지막 무구만이 우리 계획의 마지막 열쇠니까.

우리는 작별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다시 만날 사람들만이 인사를 한다.

서로 알고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녀의 마지막 바람을 이어받아야 한다.

나는 그녀의 사역룡을 타고 아이트나 산의 분화구 옆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으로 향했다.

이젠 트레이닝 받은 결과를 보여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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