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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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3일 목요일 오후 8:40

“살면서 그런 때가 있어. 우린 누구나 상처를 받아. 또 누구나 상처를 주지.”

 

의자에 묶여 한 손에 총을 든 채로 벌벌 떠는 에반의 주위를 데비안이 천천히 걸었다.

그는 별 것 아니라는 듯 에반의 주변을 천천히 걸었다.

데비안의 구둣소리가 작은 방에 울려퍼졌다.

벽지마저 낡아 헤진 건물의 방.

쿰쿰한 반지하 특유의 습한 기운이 느껴졌다.

데비안은 의자에 앉은 에반을 보여 말했다.

 

“에반, 상처는 가만히 놔두면 덧난다구.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선 약을 발라야 해. 그리고 약은 다른 생물로 만들어지지.”

 

데비안은 당연히 그의 말이 맞다는 듯,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가 턱짓으로 에반의 팀원을 가리켰다.

 

“생물의 성분을 이용해서 만들어지는 약. 그것을 만들기 위해선 다른 생물을 죽여야 하는 거야. 마치 지금처럼.”

 

에반은 분위기에 겁을 먹었는지 아무런 움직임도 보일 수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에반의 오른손 뿐.

데비안은 결정하지 못하고 벌벌 떠는 에반에게 다가갔다.

데비안은 에반의 턱을 잡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에반의 눈에 데비안의 또렷한 눈동자가 비춰졌다.

흔들림 없는 눈동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할 때 보일 수 있는 눈동자였다.

 

“쉬워. 아주 쉽다고.”

 

데비안은 에반과는 달랐다.

그는 에반이 손에 든 권총을 빼앗았다.

 

탕!

 

총성이 울려 퍼졌다.

에반의 볼에 뜨끈한 무언가가 묻었다.

피어오르는 연기.

매캐하게 느껴지는 화약의 냄새.

그저 벌벌 떨고만 있던 에반의 앞, 입이 막힌 채 밧줄에 묶여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던 동료의 눈에 있던 생기가 사라졌다.

 

“아주 간단해. 총을 표적에 향하고 방아쇠를 당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필요 없어.”

 

데비안이 웃으며 탄창을 분리한 뒤 다시 총알을 한 발 장전했다.

그 후 총을 에반의 손에 쥐어줬다.

에반은 다시금 돌아온 총의 무게감을 느꼈다.

묵직한 무게감.

하지만 사라진 생명에 비해선 한없이 가벼울 무게였다.

데비안은 쓰러져 있는 여자를 발로 밀어 구석으로 치웠다.

그리고 문을 열어 다른 타겟에게 향했다.

에반은 떨리는 눈으로 데비안이 연 문 밖을 쳐다봤다.

의자에 몸이 묶인 두 명의 동료가 더 남아있었다.

데비안은 고민없이 가까운 타겟을 끌고 왔다.

그가 끌고온 타겟 뒤로 익숙한 얼굴이 의자에 묶여 있는 것을 봤다.

벤이었다.

자신이 들어왔을 때 무척 반겨주었던 인물이었다.

에반은 그 타겟과 눈을 마주했지만, 데비안이 곧장 문을 닫아버렸다.

데비안이 끌고온 다른 타겟이 의자에 몸이 묶인 채 발버둥을 쳤다.

 

“읍!!! 읍!!!”

 

혀를 찬 데비안의 손바닥을 휘둘렀다.

끌고 온 표적의 뺨에서 철썩하는 소리가 났다.

발버둥치던 표적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가만히 있으라고, 당장 나한테 죽고싶지 않으면.”

 

데비안이 으르렁거렸다.

낮은 목소리에 담긴 살기가 느껴지는 듯 했다.

제 정신이 아닌 자만 가지고 있는 분위기.

조용해진 타겟을 뒤로 하고 데비안은 에반에게 다가왔다.

 

“그럼, 다음 기회야. 우리 쪽에 입단하려고 왔는데 세 번의 기회나 주는 것은 좀처럼 있는 일이 아니라고?”

 

남은 기회는 두 번.

총을 데비안에게 쏘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의자에 묶인 채로 오른손만 자유로운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는 폭도 제한되었고, 무엇보다 데비안을 죽이는 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 조직에 속해있는 데비안은 그저 작은 부하에 불과했으니.

에반이 이 조직에 들어야 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일망타진.

국가의 능력에 비해 이 조직의 신출귀몰함은 남달랐다.

그에 국가는 에반을 투입했다.

조직이 모일 근거지를 알아낸 뒤, 군과 경찰을 모두 투입해 그들을 일망타진 하기로 결정한 것.

하지만 일은 쉽지 않았다.

그를 위해 조직된 팀이 하나씩 제거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남은 다른 팀원들마저 문 밖에 묶여있었다.

이렇게 조직에 들어간다고 무엇이 달라질까.

그렇다고 조직에 들어가지 않을 수도 없다.

자신의 목숨이 사라질테니.

다른 동료들이 묶여있는 것을 보면, 이미 팀의 목적은 들킨 상황.

과연 동료를 쏜다고 자신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고민해보았지만, 에반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데비안은 계속 망설이는 에반의 총을 빼앗아 다시금 방아쇠를 당겼다.

 

탕!

 

또 한 명의 동료가 사라졌다.

데비안은 무표정으로 문을 열고 에반의 마지막 동료를 끌고왔다.

 

“단 한 번. 눈 딱 감고. 검지 손가락만 살짝 당기라고. 그럼 너는 사는거야.”

 

데비안은 에반의 품 속을 뒤져 그의 지갑을 꺼냈다.

데비안이 펼친 에반의 지갑 속에는 작은 가족 사진이 꽂혀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사진 속 작은 여자아이.

데비안은 에반의 눈 앞에 사진을 들이밀고 흔들었다.

 

“에반, 니 딸 애시는 봐야 하지 않겠어?”

 

에반에게 쥐어진 권총.

마지막 기회.

마지막 총알.

가족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에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데비안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오! 드디어! 결정한건가? 그래,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그냥 손가락 한번 가볍게 당기면, 넌 살아남을 수 있고, 딸도 볼 수 있어.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데비안은 에반의 등을 탕탕 두드렸다.

동료는 에반을 보며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데비안은 에반에게 나긋하게 속삭였다.

 

“자, 눈 딱 감고. 위치 조정은 내가 해주도록 하지.”

 

그래, 딱 한번이니까.

에반은 눈을 질끈 감았다.

어두컴컴한 반지하였지만, 감은 눈꺼풀을 통해 희미한 빛이 느껴졌다.

한 번.

에반은 ‘단 한 번이면 모든 것이 끝나는 거다.’라며 되뇌었다.

안하면 죽고, 하면 산다.

차라리 빨리 하고 끝내버리자.

에반은 있는 힘껏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총성은 울려퍼지지 않았다.

에반이 눈을 떴을 땐, 눈 앞의 모든 것이 멈춰있었다.

마치 정지화면 처럼.

에반이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봤지만 눈에 비춰지는 모든 것이 변함없었다.

시야의 각도가 틀어지면 보이는 것이 달라짐에도 전혀 달라짐이 없는 것이었다.

에반은 바뀌지 않는 시야에 멈춰있는 데비안에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데비안은 아무런 답도 하지 못했다.

 

에반은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그의 귀에 희미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는 천천히 가까워졌다.

그리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팬 소리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바뀌지 않는 시야 너머, 팬은 사정없이 돌았다.

에반에게 다가온 인기척이 에반에게 씌워진 HMD과 이어폰을 벗겨냈다.

그리고 에반을 묶은 밧줄도 풀어냈다.

 

“이거 뭐야!”

 

황당함을 품은 에반의 외침이었지만 인기척은 아랑곳하지 않고 밖으로 향했다.

남겨진 에반의 뒤로 스피커에서 결과가 흘러나왔다.

 

“대원 후보 에반, 적성 검사 불합격입니다. 어지러움이 있을 수 있으니 10분 이후 이동하시기 바랍니다.”

대원 후보? 불합격?

에반은 아직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동료는? 내 딸은?

에반은 멍하니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린 문 사이로 빠지는 방 안의 냄새와 밝은 조명은 이제까지의 일이 현실이 아닌 가상세계에 불과했음을 여실히 나타내고 있었다.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가상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가 기억을 되새겼다.

어렴풋이 기억이 돌아오고 있었다.

기억은 에반이 처했던 상황이 한낱 팀의 입단 테스트에 불과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어렴풋하게 떠오른 기억.

에반이 받은 입단 테스트 안내 문서.

그 문서에 있던 ‘내면 테스트가 있으니 보호자를 데려오세요. 희망 시 참관 가능.’ 이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그리고 자신이 동료를 보호자로 데려왔음도.

그리고 자신이 쏜 것 또한 동료였다.

 

에반은 문득 데비안의 말이 떠올랐다.

 

“살면서 그런 때가 있어. 우린 누구나 상처를 받아. 또 누구나 상처를 주지.”

 

상처를 받은 것은 이런 테스트를 본 에반이었을까? 아니면 에반의 보호자로 온 팀 동료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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