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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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9월 23일 월요일 오후 1:02

길거리를 여자와 남자가 걷고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여자와 그녀를 제지하는 남자. 여자, 로즈는 제이홉 주변을 위성처럼 돌며 재잘거렸다.

“제이홉, 난 꼭 달에 갈거야.”

“또야? 로즈, 달에 가고 싶다고 하도 말해서 귀에 딱지가 앉겠어.”

“그렇지만 이거 봐. 첫번째 달 탐험가가 될 기회라고.”

로즈가 제이홉에게 내민 것은 휴대폰에 보이는 광고였다.

<첫 달 탐험가가 되세요!>

<단 한명. 역사에 기록될 사람을 구합니다. 위험한 여정. 무임금. 혹한. 외로움. 사고시 책임지지 않습니다. 성공 시 명예와 역사의 기록에 남겨짐>

어니스트 새클턴의 남극 탐험대원 광고와 비슷한 문구. 제이홉은 말도 안되는 내용을 봤다는 듯 표정을 찡그렸다. 그는 안경을 한 손으로 안경을 치켜올렸다.

“아니, 남극이랑 달은 달라. 너의 열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어. 위험하다고!”

그는 달에 가면 안되는 이유를 꼽았다.

“첫째, 저긴 남극이랑 다르게 유인으로 가는 것이 처음이야. 둘째, 우주선이랑 다르게 궤도엘레베이터의 첫 유인 실험이야. 셋째, 일반인이 아무런 지식 없이 갈 수 있는 곳도 아니야.”

“에베베베. 몰라 난 그런거.”

로즈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며 귀를 막았다. 제이홉은 한숨을 쉬었다. 항상 그랬다. 어릴적부터 로즈는 천방지축이었다. 그녀가 가지고있는 ADHD적인 성향도 한 몫 했다. 논리적이지도 않았고, 한 곳에 집중하지도 않았다. 다만, 달에 대해서는 항상 같았다. 집중하지 못하는 그녀가 유일하게 집중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달에 가는 것이었다.

“달에 가면 부모님도 걱정하실거야.”

“......”

부모의 이야기를 꺼내자 조용해지는 로즈. 제이홉은 흠칫 놀랐다. 부모를 들먹여서는 안됐었는데. 기껏 기분전환을 시켜주려 했는데 도루묵이었다.

그는 손을 그녀의 머리에 올려 쓰다듬었다. 로즈의 기분이 금새 풀렸다. 스킨십을 좋아하는 그녀였다.

의도적으로 단절된 대화가 다시 시작된 것은 식당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제이홉이 로즈를 데려온 곳은 이탈리안 레스토랑. 일반적인 커플들이 자주 가는 곳이었다. 비록, 그들이 커플은 아니었지만.

로즈는 제이홉을 흘겼다. 제이홉은 그런 그녀를 보며 어깨를 으쓱 했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 가게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로즈가 메뉴판을 보고 징징거리기 시작했다.

“빵이 메뉴에 보이는 것이 싫은데, 꼭 여길 와야겠어?”

“로즈, 메뉴에 빵이 보이면 어때서? 왜 빵이 싫은거야.”

“빵은 부스러기때문에 우주에서 퇴출된 음식이라고! 얼마나 무섭게 기계를 고장냈을 지 알아?”

“하지만, 넌 일반인이잖아.”

로즈는 고개를 팽-하고 돌렸다. 제이홉은 익숙한 듯 자신이 먹을 빠네 파스타와 평소 그녀가 자주 먹던 메뉴인 크림 리조또를 시켰다. 가루가 날리지 않으면서도 칼로리가 높은 꾸덕한 음식. 페이스트 형식으로 만들어도 먹기 쉽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잡담을 하며 식사가 진행됐다. 로즈는 제이홉의 파스타에 나온 빵을 째려봤다. 제이홉은 눈빛을 눈치채지 못한 척 식사를 마쳤다.

식사를 마친 로즈가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난, 꼭 달에 갈거야.”

“네네, 약 드실 시간이예요.”

제이홉은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로즈는 약을 먹어 버릇했다. 먹지 않으면 일상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녀를 챙기는 것은 소꿉친구인 제이홉의 의무. 아니, 희망이었다.

그는 로즈가 자신의 손에서 약을 가져갈 때 자신의 손바닥을 감싸듯 약을 가져가는 것이 좋았다. 그녀와 살갗이 닿을 때면 행복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다른 여자들에게는 이런 기분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로즈는 그렇지 않았다. 그저 그가 친구인 양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러고보니, 약이 좀 다르네?”

제이홉이 물었다. 평소 먹던 약에 비해 많은 약의 갯수. 로즈는 아무렇지 않게 답했다.

“좀 안들어서. 다른 약으로 바꿨어.”

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원래 그렇게 쉽게 바꿀 수 있는 약인가 싶었지만 본인이 그렇다니 그러겠지.

“아무튼! 이거 봐라!”

로즈가 자랑하며 휴대폰을 내밀었다. 제이홉이 휴대폰을 받아들여 화면을 보자, 화면엔 '신청되었습니다.' 라는 글씨만 보였다.

“이게 뭐야? 뭘 신청했는데 또.”

“궤도 엘레베이터. 신청했어.”

제이홉이 벌떡 일어났다. 갑작스런 그의 기상에 의자가 드르륵 거리며 밀려나 넘어졌다. 식당에 고요가 찾아왔다. 앉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그를 쳐다봤다. 그는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고 사과했다. 의자를 다시 집어넣고 앉은 그가 그녀를 바라보고 말했다.

“위험하다고 했잖아. 지금이라도 취소해!”

로즈는 고개를 저었다.

“못해. 아니, 안해.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어떻게 놓치겠어.”

제이홉은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녀가 로켓을 발사하겠다며, 물로켓 대회에서 열추진로켓을 발사했을 때처럼. 일어나면 안되는 일을 종종 저지르는 그녀였지만 정도가 심했다. 그녀는 이후로도 열 추진 로켓을 만든다며 화약과 가까워졌다. 그는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좋아하는 취미라는데 그가 뭘 어쩌겠는가. 그는 한낱 친구일 뿐인데.

그는 그녀를 말리기 위해 입을 열려했지만, 그녀의 결연한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지을 때는 도저히 말릴 수 없었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이다.

마치 발사된 로켓이 처음 상태 그대로 원위치에 되돌아 올 수 없는 것처럼.

그와 그녀가 집으로 돌아올 때는 보랏빛으로 빛나는 하늘이 보일 때였다. 보랏빛 하늘. 달이 가까워진 이후 생긴 현상이었다. 달이 가까워진 이후, 조금 더 가벼워진 먼지들이 하늘을 수놓았고, 산란되는 빛이 만들어낸 색이 보라색이었다.

가까워진 달을 막기 위해 인류는 기둥을 달까지 세웠다고 했다. 어떻게 세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샌가 생겨있었다. 인류는 그렇게 연결된 기둥을 이용해서 궤도 엘레베이터를 만들었다. 수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다행히 기둥은 멀쩡했다. 사람들은 말했다. 달에서 궤도 엘레베이터를 치우지 않는 이상, 중력이 기둥을 받치고 있어 기둥은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고.

보랏빛 하늘이고 달이고 로켓이고. 제이홉은 그것들을 싫어했다. 그녀를 자신에게서 빼앗아가는 달을 노려봤다. 그녀가 자신이 아닌 달에게 가까워지는 것이 싫었다.

집 앞에 도착한 그녀는 그에게 인사했다.

“그럼 난 가볼게.”

“응, 조심히 들어가. 잘 씻고 자고.”

“내가 그것도 안할까봐?”

그는 말없이 방긋 웃었다. 그녀는 그를 보고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몸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떨어지지 않는 걸음. 가벼워진 먼지가 하늘에 날리는 만큼, 자신의 발이 땅에 붙어가는 듯 했다.

시간이 다가왔다.

그녀는 궤도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녀가 맨 가방엔 짐이 가득했지만 괜찮았다. 달에 가는 것은 그녀 혼자. 또, 엘레베이터는 로켓과 달리 어느정도의 짐에는 관대했으니까.

천천히 엘레베이터가 올라갔다. 그녀는 그녀 자신을 구속하는 중력이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꼈다. 가벼워지는 무게. 축 쳐졌던 가방이 달에게 가까워지는 것을 반기며 제 모습을 되찾아갔다.

어느 지점. 지구와 달 사이 어디쯤. 그녀는 그녀의 머리에 피가 쏠리는 것을 자각했다. 그녀의 발이 의자에 앉아있는 것과 관련없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무중력 구간이었다. 그녀는 비로소 단절을 느꼈다. 자신을 옭아매는 모든 것에서 떨어진 것이다. 가족과 여러 사람들. 그리고 제이홉.

그리고 그녀가 달에 도착했다. 궤도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그녀가 우주복을 입고 내렸다. 그녀는 허허벌판인 궤도엘레베이터 정거장을 봤다. 정거장은 첫 실험임을 자랑하듯 아무런 것도 없었다. 그저 허허벌판. 그녀는 가져온 가방을 앞으로 맸다. 가방에는 그녀가 가져온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녀는 가방에서 그것들을 꺼내 연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닥가닥 이어진 줄을 길게 뻗었다. 진공에서도 사용될 수 있는 전기방식이었다.

그녀가 궤도 엘레베이터가 연결된 달의 접합부에 다가가 그것들을 설치했다. 그리고 길게 줄을이었다. 다른 것은 중요치 않았다. 이 우주라면. 이 달이라면 모든 것과 동떨어질 수 있었다. 그녀의 가방 안에 들어있던 약 봉투가 떨어졌다. 그녀는 달 먼지 위에 놓인 약봉투를 쳐다보았다. ADHD약과 우울증 약이 함께 들어있는 봉투였다.

그녀는 약봉투를 발로 밟았다. 그리고 줄에 연결된 레버를 당겼다.

그것. 폭탄들이 폭발했다. 궤도 엘레베이터가 진동했다. 지구와 연결된 기둥또한 진동했다. 그녀는 찰나의 순간을 머릿속에 똑똑히 새겨두었다. 짧은 시간이 기나길 시간으로 변했다.

폭탄 하나하나가 터져갔다. 기둥을 두르고 있는 폭탄이 기둥을 하나하나 쪼았다. 그렇게 기둥이 부서지고, 기둥과 달의 사이에 많은 공간이 생겼다. 그녀의 시간이 다시 돌아왔다. 달과 기둥 사이 있었던 공간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안돼!’

떨어졌던 지구와의 연결점이 달에 달려들었다. 만유인력. 큰 충격이 모두를 덮쳤다. 기둥이 쓰러졌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이 단절되었음을 느꼈다. 그것이 그녀의 큰 바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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