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이 썩어가는 냄새. 그럼에도 볼을 스치고 지나가는 장막의 부드러운 느낌. 앞이 보이지 않는 장막이 드리워진 깜깜한 공간. 그곳을 헤집고 들어갔다. 어둠이 걷히고, 점점 밝아지는 시야. 장막 너머 내가 도달한 곳이 바로 블랙마켓의 경매장이었다.
블랙마켓 경매장.
세상 사람들이 숨기기 급급하던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장소.
오늘은 내가 출품한 물건이 선보여지는 날이다. 이번에도 많은 돈을 벌어갈 수 있을 것이다. 과거 팔았던 다른 유물들처럼.
침을 꿀꺽 삼키며 자리에 앉았다. 이전 물품들이 내려가고 마침내 사회자가 등장했다.
“자, 드디어 기대하시는 오늘의 마지막 상품입니다! 사고가 있었던 러시아 우주선 소유즈 1호의 낙하산 모듈입니다!”
사회자의 말에 참가자들이 웅성댔다.
웅성대는 것도 당연했다. 소유즈 1호 사건. 러시아에서 발사한 우주선이 지구에 귀환하는 도중 낙하산 모듈에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사람들이 사망했고, 까맣게 탄 블라디미르 코마로프의 시체는 발 밖에 찾아볼 수 없었다고 했다.
“그러게 나한테 잘 보였어야지.”
잘난척하기 바빴던 코마로프는 내 동료 중 하나였다. 과거에선 말이다. 잘난척에 빠져서 살던 그 녀석이 내 부모님을 욕먹였을 때, 그의 죽음은 결정되었던 것이다.
나의 중얼거림에도 경매는 계속 진행되어갔다.
“출품인이 보관을 기가 막히게 했기 때문에 물품의 상태가 아주 좋습니다. 시간의 흐름이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방금 만들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저희 마켓에서 제작자의 보증마저 얻어왔으니 물품의 진위여부는 의심치 않으셔도 됩니다!”
사회자의 말에 더욱 웅성대는 사람들. 나는 코웃음쳤다. 당연하지.
“8백만 달러, 9백만 달러. 천만! 천만 나왔습니다! 더 없습니까?”
침을 삼켰다. 천만 달러. 이제까지 벌었던 금액 중 가장 큰 금액이다. 여행 기념품을 챙기면서 복수도 할 수 있고, 더불어 천만달러라니. 수수료를 뗀다 해도 이미 충분히 남는 금액이다.
내가 감격하건 말건 사회자는 경매를 마무리 지었다.
“셋, 둘, 하나! 소유즈 1호의 낙하산 모듈이 천만 달러에 낙찰되었습니다!”
땅땅땅 하는 망치 소리가 경매장에 울려퍼졌다. 이제 저 돈은 내 것이다.
돈을 수령받는 도중이었다. 커다란 키의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군인이라도 된 듯 다부진 몸을 가지고 있었다. 난 최대한 모른척하며 가방에 돈을 챙겼다.
남자는 주변을 곁눈질로 살피며 나에게 슬쩍 다가왔다.
“소유즈1호 모듈 판매자?”
나는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불문율이라는 것은 알고 있지만, 물건의 출처. 물어도 되겠나?”
“...”
묵묵부답에 답답해하는 남자.
“1억. 1억 달러는 어떤가?”
몸이 움찔하고 떨렸다. 물품 판매액의 10배. 좋은 기회다. 하지만 난 물품의 입수 경로를 말해줄 수 없었다. 세상 누가 시공간 여행을 했고, 그곳에서 기념품을 챙겨왔다고 믿어주겠는가?
고개를 저으니 남자는 아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불문율이라는 것을 알고 물어봤으니, 더 물어볼 수는 없겠지. 블랙마켓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이 아니거든. 아마 한번 질문을 하는 것을 허락받고 수많은 금액을 썼을 것이다. 얼만지 모르겠지만 절반 쯤 받겠군.
남자가 사라진 이후, 마켓을 떠나려던 찰나 마켓의 관계자가 찾아왔다.
“나한테 이래도 되겠어?”
“미안합니다. 그래도 금액이 금액인지라 의사를 묻지 못하고 들여보낼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긴, 금액이 쉽지 않긴 했다. 나는 관심 없다는 듯 물었다.
“비율은?”
“10:0입니다.”
“뭐? 위험을 감수했는데 하나도 못챙긴다고?”
관계자는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그쪽이 10입니다. 마켓에서는 이 건에 한해 수수료를 챙기지 않기로 했거든요.”
모든 금액이라.
“금액은?”
“열배. 금액은 이미 차명계좌로 넣어두었습니다. 스위스 은행에 이 상패를 전달하면 가져가실 수 있을 겁니다.”
“철저해서 좋군.”
이번일로 얻은 금액은 1억 1천만 달러. 여러번 이 일을 해왔지만, 더 이상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을 큰 금액이다. 과거 개변도 이제는 큰 위험으로 느껴지기에 그만둘 때가 된 상황. 관계자가 전해준 상패는 나의 능력에 대한 보상 같이 느껴졌다.
작은 상패는 캐스터네츠만한 크기였다. 상패에는 '소련의 붉은 별. 연방에게의 도움에 감사를.' 이라고 적혀있었다. 나무로 된 소련의 붉은 별이 그러진 상패. 다른 나라를 경유했다간 금방이라도 잡힐 것만 같은 상패였다. 나무 상패는 속이 비어있는지 텅 하는 울림 소리를 냈다. 가벼운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리라.
이 정도의 리스크에 대해 모든 금액을 받을 수 있다니. 금액도 만만치 않으리라.
나는 흥겹게 상패를 챙겼다.
러시아의 기차를 통해 스위스로 길고 긴 여정을 떠나는 길.
나는 침대칸에 누웠다. 10시에 누웠으니 아침에는 깰 것이라 생각하며. 시공간 이동이라는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거든. 과거로 밖에는 못가지만 말야.
도중에 종종 무언가가 웅웅대는 소리에 머리가 아파왔지만, 러시아 기차가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는가. 나는 침대칸에서 수면을 취하고 있었다.
뒤척인지 얼마나 됐을까?
복도에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것이 느껴졌다.
힘겹게 눈꺼풀을 들어올려 창 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역에 도착하기 한참 전. 깜깜한 어둠. 나는 시계를 쳐다보았다. 시계는 아직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10시?”
불길함이 느껴졌다.
아침 10시면 분명 밝아야 할 시간. 하지만 몸의 감각은 서너 시간이 지났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하지만 시계는 움직이지 않았다.
웅웅거림이 더욱 심해졌다.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무언가가 이상했다. 뭔가 진동이 느껴지는 것이 이상했다. 나는 품 속의 상패를 꺼냈다. 진동이 상패에서 느껴지는 듯 했다.
“나무가 왜 진동을...”
꽝꽝 울려대는 머리를 감싸 쥐며 고민하자 머릿속에 생각이 하나 스쳤다.
상패!
러시아가 과거 미국에 선물했던 상패. 그 상패에는 통신을 위한 장치가 들어있었다. 미국에서 탐지를 해보았지만, 배터리가 들지 않은 상패에서는 어떠한 열도 발생하지 않았다. 하지만 원거리에서 주파수를 흘리면 전력을 얻어서 도청을 할 수 있던 장치가 있었다.
나는 서둘러 상패를 내리쳤다.
쾅
상패가 쪼개지자, 상패에는 무엇인가 기계 장치가 들어있었다.
큰 소리가 울려퍼지자, 주변에서 발자국 소리들이 더욱 가까워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