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이는 특이한 아이다.
다른 아이들이 PC방에 가거나 오락실에 갈 때에도 훈이는 같이 가지 않았다. 친구들과 놀기를 꺼려하는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곳에 대한 탐험이나 발명 대회에는 곳잘 참여하고는 했다.
또한 그는 책읽기를 즐겨했다. 또래 아이들이 ‘화산에서 살아남기’ 라던지 ‘해리 포터’와 같은 소설처럼 재미있는 글을 볼 때에, 그는 도서관에 가서 수 많은 작은 글자들이 빼곡한 종이 뭉치를 보곤 했다.
훈이는 자신이 새로운 언어를 만들었다고 했다. 훈이가 우리에게 새로운 언어를 알려줬지만, 영 알 수 없는 문자를 써서 인지 아무도 그 언어를 배운 사람은 없었다. 친한 친구인 나 마저도 훈이가 준 교재(공책에 한땀한땀 연필로 쓰여진)를 책장에 박아 놨으니 없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훈이는 가끔 자신을 회귀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가 말한 미래는 오지 않았다. 그가 한국에 자신을 F라고 소개하는 사람이 온다고 했지만 그런 사람은 오지 않았다.
당연히 훈이는 친구들 사이에서 헛소리를 하는 사람으로 찍혔다. 하지만 또래 아이들이 무시할 때에도 그는 기죽지 않았다. 그는 어른처럼 뚝심있는 사람이었다.
중학생부터는 그가 비트 코인이라는 것을 샀다. 1만개면 피자를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어디서 돈을 긁어모았는지 시중에 있는 비트 코인의 99.9퍼센트를 모두 샀다고 했다. 물론, 비트 코인은 망했다. 시간이 지나서 뜬 것은 비트 코인이 아닌 메가 코인이었다. 그는 한탄을 금치 못했다.
그의 이상한 점에 대해서만 말했지만 그가 이상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훈이는 가족을 살뜰하게 챙겼다. 친구들도 잘 챙겼다. 따지고보면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 몇몇에게 마저도 온정을 나누었다. (아주 격하게 괴롭힌 녀석들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전학을 갔다.) 그럼에도 친구들은 괴팍한 그에게 이야기 하는 것을 꺼려하고는 했다. 결국 어른이 되어서까지 그와 연락하는 것은 나 뿐이었다.
하지만 일을 하게 되면서 나 마저도 그의 연락 빈도가 점차 줄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도 연락했어야 했고, 집중해야 할 일들이 생기면서 더욱 그랬다. 바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AI가 나왔을 때 무척이나 반가웠다. 취업 후 연락했던 훈이는 나를 만류했다. 그는 이렇게 가다간 모든 사람이 AI에게 휘둘릴 것이라고 했다. AI는 신과 다르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못한다고. 결국 AI는 우리를 애완동물이 챗바퀴에서 돌 듯 키울 것이라 했다.
하지만 나는 AI를 계속 썼다. 당장 내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훈이는 일을 하지 않았다. 그는 항상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일을 하지 않는 훈이에게 공감할 순 없었고, 말 할만한 것들은 점점 사라져갔다. 직장에서 있던 일을 말하기엔 그는 너무 오랬동안 백수였다. 놀라웠던 통찰력은 더이상 놀랍지 않아졌다. 한번은 훈이가 손가락 중지의 살이 벗겨졌다고 했다. 글을 쓰다가 그랬다나? 창작은 신만 할 수 있는 일이라며, 자신이라는 신을 받들라고 했다. 농담마저 재미없어졌다. 이쪽은 일을 하기도 바쁜데.
AI를 사용하게 되면서 일하는 시간이 줄었다. 나는 다른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생산성이 보장되었다. 일을 하다가 막히면 AI에게 물어봤고, AI는 놀라운 통찰력을 통해 나에게 길을 제시해줬다. 사람들이 많이 해본 일이면 더욱 그랬다. AI는 자세히 알려주면 줄 수록 상세하게 답변을 해줬다.
모든 사람들은 AI에게 모든 일을 맡겼다. AI는 점점 발전했다. 이제는 짧게 알려줘도 AI가 역으로 질문을 하면서 모든 일을 해결해줬다.
통찰력이 있던 훈이와의 연락은 그렇게 점점 줄었다. 웬만한 일은 AI가 해결해 줬다.
좋은 시절은 그렇게 오래가지 않았다. 훈이가 걱정하던 대로였다. 세상 곳곳에서 해고의 바람이 불었다. 모든 회사들이 점점 축소됐다. 고용도 마찬가지였다. 여럿을 고용하는 것 보다 AI를 써서 한 명이 여러 일을 처리했다. 기업은 신규 인력도 뽑지 않았고, 경력직도 퇴사하면 회사에 들어가기 쉽지 않아졌다.
나는 일용직을 시작했다. 일거리를 알선해주는 사이트가 생겼다. AI를 통해 인력을 관리하는 웹 페이지는 어떤 사람이든 차별없이 받아서 일을 분배했다. 평판관리도 해주고, 맞는 일을 찾아주는 사이트는 알맞은 일을 찾아주었다. 일이 없어서 방황하던 사람들에게 가뭄의 단비같은 일이었다.
결국 모든 일거리가 그 사이트를 통해 이루어졌다. 심부름, 배달, 아르바이트, 회사일. 대기업마저도 알선 사이트를 이용했다.
어느날 뜬금없이 훈이에게 문자가 왔다. ‘해냈다.’라는 문자였다. 정말 뜬금없는 문자였다. 나는 돈을 벌기 바빴기 때문에 문자를 잊고 일에 몰두했다.
일용직 일은 계속 됐다. 알선 사이트를 통해 하기 쉬운 일이 들어오고, 나는 일을 했다.
어느날부터 알선 사이트에서 사람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평점이 낮은 사람들 순서였다. 평소부터 점수 관리를 잘 하지. 평소 관리를 해왔던 것이 득이 되었다.
하지만 결국 그 날이 오고 말았다.
알선 사이트에서 일을 주지 않았다. 내 점수는 5점 만점에 4.9점. 정말 이상한 사람을 제외하면 제대로 관리했던 점수였다. 허탈함이 몰려왔다. 내가 일을 해왔지만 얻었던 것이 없었다. 생각해보면 시키는 일에 대해 처리만 하는 단순한 일 뿐이었던 것이다.
일이 잡히지 않는 날이 지속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일이 들어오지 않을까? 하며 멍하니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문득, 쌓여있는 문자와 메신저 메시지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문득 훈이 생각이 났다. 그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훈이에게 연락하려고 휴대폰을 봤다. 훈이의 마지막 연락이 휴대폰에 표시됐다.
‘해냈다.’
뭘 해냈을까? 궁금해진 나는 훈이를 찾아가기로 했다.
훈이가 살던 곳을 찾는 것은 쉬웠다. 그는 비트 코인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기념으로 팔았다. 개당 10만원이었다. 기념품으로 파는 전자 재화였지만 물리적으로 USB 지갑에 담아서만 팔았다. 온라인 전자 거래는 없었다. 오직 실물 거래 뿐이었다.
사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지만, 기념품으로 사는 사람이 있었으니 먹고 살기는 충분했을 것이다.
나는 훈이가 비트 코인 판매점으로 등록한 주소를 찾아갔다. 하지만 판매점은 보이지 않고, 왠 낡은 건물이 나를 반겼다. 입구로 다가갔다. 오랫동안 방문하는 사람이 없었는지, 거미가 이곳저곳 집을 지은지 오래였다. 나는 작은 나뭇가지를 주워와 거미줄을 걷어내고, 문을 열었다.
잠긴 줄 알았던 문은 열려있었다. 아무렇게나 바닥에 흐트러져 있는 USB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지의 퀘퀘한 냄새가 코를 텁텁하게 만들었다.
방에는 먼지가 쌓여있었다. 빼곡히 노트가 꽂힌 책장. 노트 표지 앞 선반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그가 사라진 시간을 나타내는 듯 했다. 후 하고 바람을 불어 먼지를 걷어냈다. 쌓인 먼지가 툭 하고 떨어지고, 나머지 먼지 잔해가 허공에서 내 코를 간질였다. 몇 번이나 재채기를 한 후에야 훈이의 공책을 뽑아들 수 있었다.
공책은 알 수 없는 언어로 쓰여 있었다. 이 언어는 그거였다. 그가 만들었던 언어. 나는 창고에 박혀있던 그의 언어 교재를 가져왔다. 그리고 하나하나 비교해가며 그의 유산을 읽어 들어갔다.
공책에는 그의 철학이 쓰여있었다.
사람의 가치. 노동력. 창작. 생산. 물리적 기록.
그가 늘 고뇌하던 주제였다. 종종 연락했을 때에, 그는 항상 주장했다. 그는 AI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AI는 무에서 새로운 것을 창작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가 평소 선망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그러지 않았을까? 새를 보고 비행기를 상상하기도 했다고 했던가?
노트를 계속 읽었다. 훈이의 필체가 점점 휘날려지고 있었다.
사람의 가치는 값싼 노동력 뿐인가? 컴퓨터에 의해 지배되는 사람들. AI는 도구로써 사람에게 쓰인다.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AI. AI에게 만들어진 AI. 그리고 AI에 의해 지배되는 인간.
시선이 마지막 문장에 꽂혔다. 섬뜩했다. 나는 문득 나의 삶을 회고했다. AI를 이용하던 내가, 언제부턴가 AI에게 일을 받아서 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예상한 것일까?
다시 노트를 읽었다. 그의 통찰력이 내 눈을 노트에 못 박았다.
종종 노트에는 훈이의 다짐이 반복해서 쓰여있기도 했다. 완전한 무에서의 창작. 아마 그의 목표였을 것이다.
글씨는 갈 수록 휘날려졌다. 점점 노트의 내용마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갔다.
계속되는 논리의 비약.
알 수 없는 논리의 비약이, 그 거리가, 점점 넓어졌다.
이해할 수 없는 비약이 계속되었다. 노트를 넘기는 내 손이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노트에 적힌 언어가 점점 뭉그러져 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
그곳에는 이제 문자라는 형체마저 잃어버린 무엇인가가 공책 한 편에 빼곡히 적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