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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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6일 목요일 오후 8:32

1.

여행지로 가는 버스.

홀로 백수인 나는 부모님 대신 모임에 나가게 됐다.

이번 모임에도 못나가면 벌금을 내야한다나?

'그럴거면 모임에 참여나 하지 말지'

나였으면 모임을 아예 안나가고 잠수탔겠다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미 이렇게 된 것 어쩌겠는가?

나는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모임원들을 보따리에 넣어서 공중에서 떨어트리는 상상을 했다.

그나마 마음이 조금 진정됐다.

부스럭

옆에 있는 사람이 있다는걸 깜빡하고 있었다.

난 황급히 머릿속에서 상상을 치웠다.

옆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했다.

찰랑거리는 머리카락.

은은하게 풍기는 향수냄새.

평소에도 다양한 상상을 자주 떠올리는 나는 부모님들이 걱정하는 유일한 자식이었다.

나를 제외한 가족들은 모두 현실적인 사람들이었다.

앞가림을 하는데에는 문제가 없을 만큼.

하지만 나는 아니었다.

평소에도 다양한 공상들을 하기 일수였다.

내가 만약 엄청나게 강한 사람이라면?

내가 만약 수퍼맨이라면?

이 세상이 꿈이라면? 마치 아자토스가 꾸는 꿈이라면. 

 

그때였다.

옆에 앉아있던 모임장, 이희연이 나에게 말을 건 것은.

“분홍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아보실래요?”

“네?”

“어때요? 코끼리가 생각나요?”

“어……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

“그거 몰라요? 뇌의 동작 방식.”

“들어보긴 했는데요.”

내가 어색함에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그녀가 다시 다그쳤다.

“뇌가 입력은 되는데 삭제는 안된다잖아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갑자기요?”

“네. 헤헤”

빛나는 미소였다. 나같은 현실적이지 못한, 공상만 주구장창 하는 쓸모없는 인간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나는 하하 하고 멋쩍게 웃으며 다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뜬금없는 대화를 멈출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우리 모임이 가는 곳이 상상의 바다라는 이름의 장소거든요.”

“상상의 바다요?”

처음 들어보는 지명에 마지못해 대화를 받았다.

상상의 바다가 무엇일까?

그러자 그녀는 흔쾌히 대답했다.

“생각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왜 듣기만 한 것처럼 말하세요?”

“제가 모임장이긴 한데, 모임 참여는 처음이라서요.”

그녀가 멋쩍게 웃었다.

“하지만, 모임에서 상상의 바다를 갔다 온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엄청난 곳이더라구요. 꼭 가야 할 만큼.”  

“왜 다른 사람들이랑 가지 않고…”

내가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자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람들이 오지 말라고 하길래요. 모임장을 왕따시키는 모임원들이라니. 그래서 제가 모아서 가기로 했어요!”

그녀는 몽환적인 표정을 지었다.

"꿈같아서 믿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한번 들으니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아서요. 다 이루어지는 곳이라니 소문대로라면 무척이나 행복하겠다 싶어서요.”

“꿈같다고요?”

“네. 저는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면 꿈같더라구요. 그러잖아요? 로또 당첨이 된다던지 행복해하고 있으면 갑자기 일어난다던지.”

그런가?

나는 마지못해 맞장구를 쳤다.

그때, 앞에서 어떤 남자가 시비를 걸듯 중얼거렸다.

“어이쿠, 참 대단하시네. 상식적으로 그런게 있나?”

찬물을 끼얹는 듯한 말에 기분이 나빠졌지만, 엄연히 혼잣말처럼 조용한 목소리로 말한 것 같아 개의치 않았다.

여행은 이제 시작이니까.

 

일정은 단순했다.

여행지 도착 후 식사 후 관람, 식사 후 관람, 식사 후 관람 및 복귀, 취침.

꽤나 고된 여행 일정에 힘들어하는 희연을 돕다보니 어느새 이틀이 지나고 여행의 클라이막스날이 다가왔다.

상상의 바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곳은 그저 들판이었다.

갈대들이 휘날리고 커다란 나무들이 자라있는.

상상의 바다라는 이름에 기대하던 우리는 실망했다.

선두가 입장하지 않고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자 후열에서 따라오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앞으로 왔다.

“왜 안들어가요?”

"바다도 근처에 있었는데 왠 들판?"

“일단 들어갑시다. 시간도 없는데”

웅성웅성대는 사람들.

희연이 사람들을 이끌었다.

그런 테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사파리로 여행을 가던 길이었다.

이상한 간판을 지나치고 감각이 이상해졌을 때였다.

별 쓸모없는 상상을 해왔기 때문이었을까?

문든 좋은 몸을 상상하던 내 몸이 진짜로 좋아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게 발단이었던 것 같다.

 

2.

분홍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마라

그런 테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뇌는 입력은 되지만 삭제는 되지 않는다던가? 그렇기에 분홍색 코끼리를 떠올리지 말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자꾸만 머리속에서 떠오르는 분홍 코끼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사실이 정말 원망스러웠다.

도대체 왜 뇌는 이렇게 만들어져서 나를 죽이려 드는가.

땅이 흔들렸다.

“분홍코끼리를 생각하면 안돼. 분홍코끼리를 생각하면 안돼.”

“당신……! 당신 때문에 분홍색 코끼리가 늘어나잖아요!”

김현도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 정신병에 걸린 것 처럼 땅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런 그를 늦게 알아챈 희연이 비명을 지르듯 그에게 소리쳤다.

“예…… 예?”

하지만 늦었다.

다급한 이희연의 목소리에 김현도가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그는 그녀의 뒤에서 주변을 돌아보고 있는 코끼리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코끼리는 자신과 눈이 마주치는 것은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인다고 했다.

현도가 그런 생각을 할때쯤 코끼리가 그를 바라본 것은 어떻게든 일어날 일이었으리라.

코끼리가 울부짖었다.

주변을 둘러보며 같이 경계하던 다른 코끼리들이 그들 무리를 발견하고 말았다.

지축을 울리는 진동이 점점 가까워졌다.

달려오는 코끼리들의 속도는 상상 이상.

도시에서 달리는 왠만한 자전거보다 빠른 코끼리의 속력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그 속력에 더한 코끼리의 중량이 더해진다면 충격량은 어마어마하리라.

“물 속으로 숨어요!”

나는 다급히 외쳤다.

이 넓은 강에 들어가 있는다면, 코끼리무리는 어두운 강 속에있는 우리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이 다급히 강으로 뛰어들었다.

첨벙거리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이 강물로 뛰어들었다.

이제 나와 김현도, 이희연만 뛰어들면 된다.

그때였다.

“강물로 뛰어들라니 제정신이야……?!”

아직 충격에 빠져있는 얼굴로 김현도가 외쳤다.

“그럼 여기서 죽으라고요? 어떻게든 방법을 내놔봐요. 당신이 만든 거잖아 이 사단은!”

이희연이 그에게 거칠게 항의했지만 그게 오히려 악수였을까? 김현도는 악에 받힌 얼굴로 외쳤다.

“그렇지만 코끼리가 있다면 악어나 피라냐도 있을거아냐!”

“당신!!!”

이희연이 경악하며 김현도를 쳐다봤다.

그때였다

“꺄아아악!”

“살려줘!”

사람들이 뛰어들어간 강물 하류쪽에서 비명소리가 났다.

희미하게 들리는 와그작거리는 소리와 첨벙거리는 소리.

고개를 홱 돌리자 떠내려가며 비명을 질러대는 사람들 사이 움직이는 통나무들이 보였다.

통나무들이 사람들에게 다가갈수록 사람들은 더욱 기겁하며 필사적으로 뭍으로 가려고 헤엄쳤다.

하지만 수영을 가장 못하는 사람은 항상 존재하는 법.

그 사람에게 다다간 통나무는 턱을 벌려 이빨이 잔뜩 돋은 입을 열어 그 사람의 다리를 물었다.

그리고 죽음의 회전이 시작됐다.

통나무, 아니, 악어가 사람의 다리를 물고 회전했다.

다리를 물린 사람이 악어의 회전 방향에 따라 강물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그리고 먼저 뭍으로 올라온 악어.

새빨간 피가 흐르는 청바지 조각이 악어 입에 물려있었다.

악어는 찹찹 하며 다리를 삼켰다.

물 속에서 비릿한 피가 퍼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경악스러운 장면에 사람들이 뭍으로 나오기 위해 죽을 힘으로 헤엄쳤다.

하지만 사람들은 순식간에 하나둘씩 강물 속으로 사라져갔다.

“너 이새끼!”

난 분노에 차, 김현도의 멱살을 잡아 끌었다.

강한 힘으로 멱살을 잡힌 김현도가 캑캑거리며 끌려왔다.

하지만 나는 그를 다그쳤다.

“너 때문에 저 사람들이 죽게 될거야 새끼야! 니가 같잖은 생각만 안했어도!!”

“나, 나는 저렇게 되기 싫어서 안뛰어든 거라고…!!”

“정현씨. 코끼리가 거의 다 도착했어요…!”

나는 김현도를 주먹으로 후려쳤다.

김현도가 십여미터를 날아가 바닥에 쓰러졌다. 워낙 강한 위력 때문이었는지 김현도는 한방에 기절하고 말았다.

이희연이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와 눈이 마주친 나는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제 힘으로도 저 코끼리 무리는 무립니다.”

자신을 대상으로 망상을 해오길 잘했다는 생각과, 조금은 더 강한 상상을 할걸 하는 후회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하지만 그럴 시간이 없었다.

절망하는 그녀를 바라보며 주변을 둘러봤다.

강 주변 우거진 나무와 나무에 얽힌 덩굴들.

이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그녀를 품에 안아들고 나무 위로 뛰었다.

인간은 절대 불가능한 점프력.

나뭇가지 위로 올라간 나는 가슴을 두드리며 ‘타잔’처럼 포효했다.

덩굴을 잡은 내 손아귀에 더욱 강한 힘이 깃들었다.

“아아아아아”

'제인'은 아니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난 타잔이고, 난 이 사람을 충분히 구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덩굴을 잡고 그네처럼 진자운동을 시작했다.

‘이거 거의 스파이더맨인데?’

몸 속에 기이한 힘이 솟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를 옆구리에 끼고 진자운동을 하던 나는 충분히 붙은 속도를 이용했다.

덩굴을 잡은 손을 놓고 하늘로 뛰어들었다.

“꺄아아악”

이희연이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자신이 넘쳤다.

스파이더맨은 거미줄로 활강을 할 수도 있다.

나는 어떻게 거미줄을 뽑았는지 모르게 활강하는 모습을 생각하고 거미줄을 펼쳤다.

어느샌가 나와 거미줄에 묶여 고정된 희연이 나를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순식간에 우리를 스쳐가는 바람.

땅에 가까워진 나는 거미줄을 발사해 나무를 경유해 땅으로 내려왔다.

이희연이 감격한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뿌듯함에 휩싸였다.

이대로라면 이곳을 탈출하는 것도 꿈이 아니었다.

우리는 서로를 끌어안았다.

스파이더맨이 메리제인을 구출하는 것.

연인을 구해내는 것이 스파이더맨의 클리셰니까.

그리고 우리는 사랑에 빠지겠지.

이희연과 나는 서로를 애틋하게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몸이 점점 흐릿해져 갔다.

아니, 모든 것이 흐릿해져 갔다.

“희연씨!”

나는 이희연을 불렀다.

하지만 이희연은 무척이나 감동한 듯한 표정이었다.

내가 그녀를 흔들었지만 그녀는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문득 예전에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사람들이 오지 말라고 하길래요"

 

왜 오지 말라고 했었을까.

갑자기 그녀가 눈물을 흘렸다.

“아무래도 꿈인 것 같아요. 이렇게 좋은 사람이 있을 줄이야…… 그리고 이렇게 뜬금없는 일이 있을 줄이야……”

안돼!

그러면 안돼!

 

"꿈같아서 믿진 않았지만, 이야기를 한번 들으니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아서요. 다 이루어지는 곳이라니 소문대로라면 무척이나 행복하겠다 싶어서요.”

 

“네. 저는 그런 형편 좋은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나면 꿈같더라구요. 그러잖아요? 로또 당첨이 된다던지 행복해하고 있으면 갑자기 일어난다던지.”

 

그녀가 흐릿해져가다가 사라졌다.

그리고 모든 것 또한 사라졌다.

 

상상의 바다.

상상이 실제로 이루어 지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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